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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주

포은 정몽주 선생의 [임고서원[2 2.포은 정몽주 선생의 [임고서원] 2 '은행나무'이 나무는 높이 약 20m, 줄기둘레가 5.95m에 이르는 나이가 약 500년된 생육상태가 비교적 양호한 노거수이다.​​'계현재'앞의 조그만문이 숙경문이다. '숙경문'아담한 고택의 느낌을 준다. 오른쪽 작은문은 개방되어 있어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삐걱~ 하는 옛날 대문소리가 난다. '포은 유물관'여기에는 포은관, 임고관, 영상실이 있다. 유물관 앞 마당이 넓고 시원스러워 삼년묵은 체증이 아주 숙 내려가는 느낌이다. '숙경문 앞에서 본 포은 유물관 전경' '포은관' 포은 선생의 출생부터 정성을 다한 효행과 출중했던 관직 생활, 그의 삶에 대한 이야기가 고문서와 영상으로 전시되어 있고, '정몽주 선생의 초상' 영정은 경주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포은 정몽.. 더보기
정몽주 선생의 묘 1.포은 정몽주 선생의 묘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님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학창시절 지독시리 엂었던 단심가... 경기 용인 처인구 모현면, 이곳은 고려말의 충신이며 동박 이학의 시조로 추앙되던 포은 정몽주(1337~1392) 선생의 묘소이다.묘지 관리가 깔끔하게 잘 되었다. 선생의 자는 달가, 호는 포은, 시호는 문충이며 본관은 연일로 정관의 아들이다. 공민왕 9년(1360) 과거에 장원급제 후 예문관검열, 예부정랑, 대사성, 문하찬성 등 여러 벼슬에 올랐다.5부학당을 세워 후진을 양성했으며, 향교를 세워 유학을 진흥하고 우리나라 성리학의 기초를 세웠으며, 한편으로는 일본에 가서 왜구를 금지할 것을 교섭하는 등 외교활동도 하였다. 이성계의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