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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야기/경북권

김천 직지문화공원 김천 직지문화공원 경상북도 김천하면 먼저 떠오르는 곳이 ‘직지사’ 명소이다.지난여름 김천에 잠시 머무르고 있을 무렵 직지사 다녀왔었다. 하지만 몇 일 지난 후 그곳을 다시 찾기로 마음 굳혔다. 그날 ‘문화공원’을 그냥 스쳐 빠뜨렸기 때문이다.문화공원은 직지사 바로 아래 위치하고 있었기에그래서 ‘직지문화공원’이라고 이름 지었는지도 모른다. 오늘은 쏟아지는 햇살이 투명한 유리창처럼 너무나 맑다.네비를 검색하니 약25분소요 11km거리였다.직지사 방면으로 가다보니 도로 변 인도에 포도가 주렁주렁 달린‘포도터널’이 내 시선에 들어왔다. 길거리인지라 누군가가 따먹지는 않을까 하는 얄팍한 엉뚱한 생각이 들기도 하고..터널 길이는 대략 100m는 넘을 듯하다. 참 인상적이었어요. 어느 듯 공원 가까이쯤 왔나! 추천 .. 더보기
김천 직지사 직지사지난7월에 김천에서 머물고 있을때... (다녀온 때 : 2015년7월 어느 날) 더보기
신라 무열왕릉 신라 무열왕릉 신라 무열왕릉의 매표소와 입구 신라 무열왕릉 신라 제29대 태종 무열왕(재위, 654~661, 김춘추)을 안치 한 곳이다. 능은 밑둘레 114m, 높이8.7m 로 비교적 큰 편이라 한다. 신라 무열왕릉 신라 무열왕릉 서악리 고분군 이 곳에 있는 고분들이 누구의 무덤인지 밝혀지지는 않았으나, 무열왕릉 뒤편에 있는 것으로 보아 무열왕과 가까운 왕이나 왕족의 무덤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고분군 4개봉중 맨 뒤에 있는 봉 김인문 묘 무열왕릉 입구 도로 건너편에 있다 김양 묘 김인문과 김양묘가 나란히 있다. 뒤쪽에 있는 김인문 묘가 약간 크다. 더보기
포은 정몽주 선생의 [임고서원[2 2.포은 정몽주 선생의 [임고서원] 2 '은행나무'이 나무는 높이 약 20m, 줄기둘레가 5.95m에 이르는 나이가 약 500년된 생육상태가 비교적 양호한 노거수이다.​​'계현재'앞의 조그만문이 숙경문이다. '숙경문'아담한 고택의 느낌을 준다. 오른쪽 작은문은 개방되어 있어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삐걱~ 하는 옛날 대문소리가 난다. '포은 유물관'여기에는 포은관, 임고관, 영상실이 있다. 유물관 앞 마당이 넓고 시원스러워 삼년묵은 체증이 아주 숙 내려가는 느낌이다. '숙경문 앞에서 본 포은 유물관 전경' '포은관' 포은 선생의 출생부터 정성을 다한 효행과 출중했던 관직 생활, 그의 삶에 대한 이야기가 고문서와 영상으로 전시되어 있고, '정몽주 선생의 초상' 영정은 경주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포은 정몽.. 더보기
경북 영천 '임고서원' 포은 정몽주 선생의 [묘[를 안다면, [임고서원]을 함께 알아야 한다. 2.포은 정몽주 선생의 [임고서원]​ 1 경북 영천 IC에서 시내로 약 15분 정도 가면 도로변에' 임고서원'이 있다. 아마도 경북 영천시 임고면에 자리하였기에 '임고서원'이라고 하지 않았나​ 추측이 된다. ​(2015년5월3일 포은 정몽주 선생 묘를 다녀온 후, 2015년5월21일 임고서원을 다녀왔다)​ ​​ 서원 입구에 들어서게 되면 성리학의 원조 대가라는 "동방이학지조"라고 새겨진 '송탑비'가 한눈에 속 들어온다. ​ ​여기가 임고서원 인데, 왼쪽 중턱에 조그만하게 보이는 4개의 건물이 '구 서원' 이고 가운데 여러 건물들이 '신 서원'이다. ​ ​ ​ ​'구 서원'​ (사주문, 강당, 내삼문, 맨 뒤쪽이사당) 이다. 성리학, .. 더보기
불영계곡 불영사 울진 불영계곡 불영사장장 4시간을 달려, 또 4시간을 달려오는 친구내외와 우리4명이 만나, 2박3일 여행하기로 한 첫 날 만나는 장소가 불영사 였다.우리4명은 약속시간은 이미 지나버렸지만 그래도 빨리 가야겠다는 맘으로,금강송이 뿌리내린 산들이 병풍처럼 둘려져 있는 어느 한 곳도 눈을 뗄수없는 멋진 계곡, 한 컷도 못하고 스쳐 지나야만했던 불영계곡, 무언가 잃어 버린 것도 같은 아쉬움의 여백은 넓었다. (2015.05.02여행) 더보기
경주양동마을 경산서당 경주양동마을의 문화기행 열 번째 경산서당(慶山書堂) 향토문화재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의 장손 무첨당(無忝堂) 이의윤(李宜潤:1564∼1597)을 추모하기 위하여 세운 사당이다 1838년(헌종 4) 오금리 낙산(洛山)에 세웠다가 1857년(철종 8) 안계리로 옮겨 세웠고 1870년(고종 7) 금령(禁令)에 의해 헐린 것을 1918년 재건하였다. 이후 1970년 안계댐 공사 때문에 현재의 자리로 다시 옮겨 왔다. 강당인 이선당(二善堂)과 동재, 삼문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강당은 정면 5칸·측면 2칸의 팔작지붕 기와집이며 동재는 정면 3칸·측면 1칸 규모의 맞배지붕 기와집이다. 더보기
경주양동마을 이향정 경주양동마을의 문화기행 아홉 번째 양동 이향정 (二香亭) 중요민속자료 제79호 이집은 온양군수를 지낸 이향정(二香亭) 이범중 선생이 살던 곳으로 집 이름은 그의 호를 따서 지은 것이다. 조선 숙종 21년(1695)에 지었다고 하며 양동 마을 안골로 들어가는 동구 첫 어귀에 남향으로 자리 잡고 있다. 전체적으로 튼 'ㅁ'자형 평면을 이루고 있으며 크게 안채, 사랑채, 아래채, 방앗간채로 구성되어 있다. 안채 뒤쪽으로 산길을 따라 쌓은 담장이 인상적인데 사랑채 앞으로도 낮은 산이 자리하고 있어 아늑한 느낌을 준다. 담장을 따라 올라가는 오솔길에는 초여름이면 찔레꽃이 만발하여 그윽한 향기를 풍긴다고 한다 앞마당이 넓고 방앗간채가 따로 있으며, 곳간이 매우 많은 점으로 미루어 집주인이 부농이었음을 짐작케 한다. 더보기
경주양동마을 심수정 경주양동마을의 문화 기행 여덟 번째 심수정(心水亭) 중요민속자료 제81호 심수정은 벼슬길을 마다하고 형인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을 대신하여 어머니를 극진히 모신 농재(聾齋) 이언괄(李彦适, 1494~1553)을 추모하여 지은 정자이다. 회화나무와 함께하는 심수정의 전경 대문이 굳게 잠겨 건물내부를 들다보지 못한 것이 많이 아쉬웠다. '누마루방'심수정의 규모는 정자와 행랑채로 구분되는데, 특히 건물 전체의 기둥을 네모기둥이 아닌 둥근기둥으로 처리한 것은 이 건물이 얼마나 정성을 들인 건물인가를 느낄 수 있게 해준다. 두 건물은 ‘ㄱ’자형 평면으로 되어 있고 정자는 사주문을 세우고 별도의 담장으로 둘러 독립적인 공간으로 구획하였다. 행랑채는 담장을 사이에 두고 톱니바퀴처럼 만나 ‘ㅁ’자형의 공간이 될 .. 더보기
경주양동마을 대성헌 경주양동마을 일곱 번째 탐방 대성헌(對聖軒) 중요민속자료 제34호 이 집은 영조8년(1732년)에 이언적의 11세손인 아능단이 분가하면서 지은 것이다. 순조 때 문과에 급제하여 홍문관 교리를 지낸 물외 이재직이 살던집 이라 한다. 우리의 옛집들은 빼어난 모양의 산봉우리를 바라보고 자리한 경우가 많은데 그러한 산봉우리를 안대하고 부른다. '대성헌'이 집은 안대를 성주봉으로 한 것인데 집의 이름도 성주봉과 마주하고 있다는 뜻으로대성헌이라 하였다. 사랑채의 두 칸 대청 앞쪽에 여덟 짝의 문을 달아 4짝씩 접어 올리게 되어 있는 점이 특이하다.18세기 중엽에 세운 목조 가옥으로, 안채·사랑채·행랑채의 3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안채는 ㄱ자집 형태이고, 사랑채와 행랑채는 -일자형이며, 3동의 건물이 모여서 전체적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