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행이야기

서산 해미읍성 해미읍성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성벽. 크고 작게 쌓인 돌들은 제마다 해미읍성이 지나 온 역사를 머금고 있습니다. 조선시대 선조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역사의 현장 해미읍성입니다. (2014년10월31일 비오는 날) 성의 정문(진남문) 회화나무와 옥사 회화나무:수령 300년이상으로 추정, 1866년 병인박해 때 천주교 신자들을 이 나무에 매달아 고문했다고 전해진다. 옥사외부:1935년에 복원했으며, 1790년부터 100여년간 수많은 천주교 신자들을 국사범으로 규정하여 이 곳에서 투옥 및 처형하였다 남자감옥 여자감옥 객사:객관이라고도 하며 지방을 여행하는 관리나 사신의 숙소로 사용하였다 동헌:조선시대 지방관서에서 정무를 보던 중심건물이다. 관찰사수령들의 정청으로서 지방의 일반행정 업무와 재판등이 여기서 행.. 더보기
서산 간월도 간월암 충남 서산 간월도 간월암을 찾았어요. 밀물, 썰물로 간월암 가는길이 생겼다가 안 생겼다가, 섬이기도 육지이기도 하는 조금한 간월암, 가본시간에 마침 물이 빠져서 갈수가 있었습니다. 더보기
군산 동국사 동국사 군산시내 민가에 위치한 한국 유일의 일본식 사찰인 동국사(히로쓰 가옥)는 화려하지 않고 소박한 느낌의 또 다른 건축양식으로 독특한 풍경중 하나 사찰내부에는 우리 어릴 때 많이 사용 하였던 물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더보기
선운사 도솔암 마애불상 선운사 도솔암 마애불상선운사에서 계곡을 옆에끼고 단풍을 만끽하며 걷보면어느듯 4km 거리의 도솔암에 다다른다.도솔암에 다다르면 우리나라 최대의 거대한 마애불상(보물제1200호)이기다린다.석벽에 새겨진 마애불상은 고려시대 작품으로 높이가 15.6m이다.(전라북도 고창) 더보기
순천만 정원 스카이큐브(순천) 순천만 정원 스카이큐브(순천)순천만 정원과 순천만 자연생태공원을 잇는 세계 최초의 첨단 교통수단인 무공해, 저소음 친환경 무인궤도차 더보기
부산 범어사 은행나무 이야기 부산 범어사 은행나무 이야기 더보기
부산항대교의 야경 부산항 대교 더보기
서생포왜성 서생포왜성 위치 : 울주군 서생면 서생리 711번지 주면일대 성규모 : 총길이 2.5km성벽높이 : 5~8m (현재축성 높이 2~6m)서생포왜성은 임진왜란이 일어난 다음 해인 1593년(선조 26년) 일본장수 가토 기요마사가 지휘하여돌로 쌓은 16세기 말의 일본식 평산성이다.1594년(선조 27년)부터 사명대사가 4차례에 걸쳐 이곳에 와 평화교섭을 하였으며 많은 외교적 성과를 거두었다.1598년(선조31년) 명나라 마귀 장군의 도움으로 성을 다시 빼앗았고, 1년 후 왜적과 싸우다 전사한 53명의 충신들을배향하기 위해 창표당을 세웠으나 지금은 파괴되고 터만 남아있다. 더보기
경주양동마을 경산서당 경주양동마을의 문화기행 열 번째 경산서당(慶山書堂) 향토문화재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의 장손 무첨당(無忝堂) 이의윤(李宜潤:1564∼1597)을 추모하기 위하여 세운 사당이다 1838년(헌종 4) 오금리 낙산(洛山)에 세웠다가 1857년(철종 8) 안계리로 옮겨 세웠고 1870년(고종 7) 금령(禁令)에 의해 헐린 것을 1918년 재건하였다. 이후 1970년 안계댐 공사 때문에 현재의 자리로 다시 옮겨 왔다. 강당인 이선당(二善堂)과 동재, 삼문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강당은 정면 5칸·측면 2칸의 팔작지붕 기와집이며 동재는 정면 3칸·측면 1칸 규모의 맞배지붕 기와집이다. 더보기
경주양동마을 이향정 경주양동마을의 문화기행 아홉 번째 양동 이향정 (二香亭) 중요민속자료 제79호 이집은 온양군수를 지낸 이향정(二香亭) 이범중 선생이 살던 곳으로 집 이름은 그의 호를 따서 지은 것이다. 조선 숙종 21년(1695)에 지었다고 하며 양동 마을 안골로 들어가는 동구 첫 어귀에 남향으로 자리 잡고 있다. 전체적으로 튼 'ㅁ'자형 평면을 이루고 있으며 크게 안채, 사랑채, 아래채, 방앗간채로 구성되어 있다. 안채 뒤쪽으로 산길을 따라 쌓은 담장이 인상적인데 사랑채 앞으로도 낮은 산이 자리하고 있어 아늑한 느낌을 준다. 담장을 따라 올라가는 오솔길에는 초여름이면 찔레꽃이 만발하여 그윽한 향기를 풍긴다고 한다 앞마당이 넓고 방앗간채가 따로 있으며, 곳간이 매우 많은 점으로 미루어 집주인이 부농이었음을 짐작케 한다. 더보기